나는 38주 0일에 출산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날 출산하면 다음 날부터 4일짜리 설 연휴가 있어서 남편이 휴가를 쓰지 않고도 병원과 조리원에서 함께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정일쯤에 임신 전부터 잡아놓은 중요한 스케줄이 있어서 아기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에 맞춰서 제왕절개를 하기엔 수술이 너무 싫었고... 의학적 이유 없이 38주에 유도분만을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인터넷 정보가 많았다...
37주 2일
첫 내진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자궁문이 3cm 열려 있고, 자궁 숙화 70% 진행됐고, 아기도 내려와 있고, 골반 너비도 좋다며 38주 0일에 유도분만을 해도 성공확률이 높을 것 같다고 하셨다. 아기 머리도 만져진다고 하셨을 땐 조금 소름이 돋았었다..ㅎㅎ 출산 후기를 찾아봤을 때 자궁문이 3cm 열리면 아파 죽을 것 같아서 무통주사를 맞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는 아무 진통도 없었다. 일단은 조금 더 경과를 지켜보기로 하고 집에 갔다.
38주 0일 오전 9시 반
아기 낳을 각오하고 다시 병원에 내원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설연휴 끝나고 출산하는 것을 추천하셨다. 저번에는 오늘 출산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셨는데 갑자기 태도가 바뀌셔서 조금 당황스러웠고 무서웠다. 그래도 내가 일단 내진 보고 싶다고 말씀드려서 내진을 받았는데 자궁문이 3cm 보다 조금 더 열려 있었다. 이때 선생님께서 다시 긍정적인 태도로 바뀌시더니 '오늘 낳고 싶으면 자궁문 4cm로 만들어드릴게요'라고 하셨다. 오늘 낳아? 말어? 3초 정도 고민하다가 오늘 낳겠다고 말씀드렸고 스킬풀한 손기술로 자궁문을 4cm 열리게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바로 입원 절차를 밟고 분만대기실 침대에 누웠다.
오전 10시 반
유도분만 촉진제를 맞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자궁이 수축되는 게 느껴졌지만 평범한 생리통 정도의 아픔이었다. 그런데 아기 심박수를 모니터링하던 간호사분이 허겁지겁 들어오시더니 촉진제를 끄고 옆으로 누우라며 산소호흡기를 채워주셨다. 촉진제로 자궁수축이 올 때마다 아기 심박수가 120 밑으로 떨어진다고 하셨다. (120~160이 정상범위) 잠시 후 아기 심박수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다시 촉진제를 투여했다. 그런데 아기 심박수가 또 120 밑으로 떨어졌고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촉진제를 맞는 과정을 몇 번 더 반복했다.
오후 12시 반
결국 유도분만을 일시중지했다. 초반에 아기 심박수가 떨어지는 것은 아기가 놀라서 그런 것으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인데, 심박수가 계속 떨어지는 것은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으나 아기의 자세나 탯줄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빨리 꺼내달라는 신호일 수 있다고 하셨다. 설 연휴를 알차게 쓰려는 내 욕심 때문에 너무 빠른 주수에 유도분만을 했나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간호사 분께서 주수 더 빠른 아기들 중에서도 잘 버티는 아기들은 잘 버티고 주수가 더 늦어도 못 버티는 아기들은 못 버틴다고 하셔서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다. 인공적으로 진통을 만들어낸 게 문제가 된 것인지도 여쭤봤는데 자연진통이 걸렸어도 촉진제와 똑같은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심박수 떨어지는 상황이 오후에도 계속되면 수술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ㅠㅠ.
오후 1시 반
관장을 하고 운동실에서 1시간 정도 쉬는 시간을 가졌다. 원래 이 운동실은 진통이 오는 산모들이 진통을 경감시키려고 운동하는 곳인데 나는 진통이 없어서 그냥 짐볼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1시 반쯤 주치의 선생님이 올라오셨다. 내진 결과 자궁문은 촉진제의 영향으로 6cm까지 열렸고 자궁숙화도 90% 진행됐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진통이 없었다. 선생님은 지금 아기 낳기에 정말 좋은 상태인데 1단계가 진행이 안 되고 있다고 하셨다. 1단계만 넘어가면 그 뒤로는 빠르게 진행될 거라고 하셨다. 아직 죄책감이 조금 남아있던 나는 다른 날 다시 와서 시도할 수 있냐고 여쭤봤다. 그랬더니 자궁문 6cm 열린 상태로 어딜 가냐고 ㅋㅋㅋ 수술해서라도 오늘 무조건 낳아야 한다고 하셨다... 휴... 현 상황을 종합해 본 결과 선생님은 촉진제를 맞지 말고 양막을 터뜨려서 자연스럽게 아기가 내려오도록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무통주사를 지금 맞으면 막판 힘주기 할 때 힘이 안 들어가니까 맞지 말자고 하셨다... 그렇게 선생님은 손으로 양막을 터뜨리셨고 뜨거운 양수가 주룩 나왔다. 이 과정에서 자궁문이 7cm까지 열렸다. 급 자연분만으로 루트가 변경됐다.
오후 2시
처음엔 간호사 분들과 담당 선생님께서 내가 잘 참는 건지 아니면 진짜 안 아픈 건지 의아해하실 정도로 양막을 터뜨려도 아무런 진통이 없었다. 그런데 2시쯤 되자 미친듯한 진진통이 왔다. 출산 후기에서 사람들이 왜 중간에 수술시켜 달라고 애원하는지 이해되는 아픔이었다. 진통이 올 때마다 간호사 2명과 남편이 내 배를 눌러 아기를 내려보냈고 간호사 1명이 질 입구를 양옆으로 찢어 손으로 넓히는 작업을 했다. 진심 진통보다 배 누르는 게 더 아팠다. (간호사 분들이 배를 누른 것 때문에 배 전체에 멍이 들어서 상체를 꼿꼿하게 펴면 복부가 너무 아팠고 조리원에서도 계속 아팠는데 마사지 받으면서 괜찮아졌다) 힘을 잘 못주면 더! 더! 더! 하며 혼나기도 했고 힘을 잘 주면 그러취!! 하며 칭찬도 받았다..ㅎㅎ 자연분만 루트로 분만을 진행하는 중에도 아기 심박수가 떨어지는 타이밍이 있었다. 그때마다 간호사가 배가 볼록해지게 숨을 쉬어야 아기한테 산소가 전달된다고 배 볼록해지게 숨을 쉬라고 했다. 이 과정을 1시간 정도 진행하다가 아기 낳기에 좋은 상태가 됐는지 3시쯤 분만실로 침대를 옮겼다. 남편이 아기 머리카락이 보였다고 옆에서 말해줘서 조금만 더 힘내면 되겠구나 하는 존버력이 생겼다.
오후 3시
담당 선생님이 다시 올라오셨고 간호사 분들과 분주하게 아기 받을 준비를 척척 끝내셨다. 그리고 진통올 때 힘을 몇 번 줬더니 3시 20분쯤 아기가 나왔다;; 진통을 처음 느끼고 1시간 20분 만에 아기가 나왔다! 진짜 1단계를 넘어서니까 금방 분만이 진행됐다. 남편 말로는 회음부 자르자마자 아기 머리가 쑥 나왔다고 했다. 아기가 나오고 남편이 탯줄을 잘랐다. 그리고 남편과 간호사 한 분이 손가락 발가락 개수, 입천장 등 아기의 신체 곳곳을 살핀 뒤에 내 품에 아기를 안겨줬다. 엄청 울다가 내 품에 안기자 울음을 뚝 그치는 게 너무 신기했다. 선생님께서는 초산인데 무통주사도 없이 아기를 낳았다며 대단하다고 칭찬해주셨다. 회음부와 항문을 꿰매는데 이것도 굉장히 아팠다. 아픔 + 불쾌함이랄까... 후처치가 끝나자 갑자기 엄청난 추위가 느껴지면서 온몸이 벌벌 떨렸다. 그 상태로 휠체어를 타고 뜨뜻한 입원실로 이동했다. 이날 1인실과 2인실이 만실이라 6인실만 남았었다. 다들 설 연휴 전에 끝내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ㅋㅋㅋ 6인실은 입원비가 무료라서 2박 3일 동안 애 낳고 입원한 비용이 12만 8천 원 밖에 안 나왔다. 개꿀. 바우처 8만원 남았다.
출산은 정말 케바케인 것 같다. 나도 출산 전에 후기를 정말 많이 찾아봤었지만 나랑 똑같은 과정으로 출산한 사람이 쓴 후기는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출산 전에 걱정 많이 해봤자 에너지 낭비고 출산을 겪으면서 아 이게 나의 케이스구나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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